영어면접 대비

대학순위 게시판 글쓰기

노벨상 받은 샐러리맨 신화 다나카 고이치 “연구개발·산업발전 이끄는 힘은 호기심”
크리스천(내일주일) | 2011.06.11 | 조회 598

“한국인 연구자가 5년 후 10년 후에 뭔가 엄청난 것을 발견하거나 개발했다는 뉴스가 나올 것으로 봐요.”

“日(일본) 제조업 회복은 지식·기술 융합의 결과”…

“기초 연구 못지않게 물건 만드는 것(모노즈쿠리)도 중요”


그에게는 사실 지난 2월 말에 인터뷰 의뢰를 해놨었다.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만 43살에 수상,다나카 고이치는 시마즈 제작소의 분석계측 사업부 라이프사이언스 연구소 주임연구원이었는데 단백질(생체 거대분자)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 MALDI(말디)를 만든 것은 동료 4명과의 팀워크의 승리였다고 말했음) 이후의 활동과 한국에서 3월에 출판(2004년)될 예정인 그의 저서와 관련해 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3월 초에 전화가 왔다.

인터뷰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혹시라도 내 기사가 나가면 책 관련 홍보처럼 비쳐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적어도 책이 나온 지 3개월은 지나서 하고 싶다는 순박한 설명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3개월이 지난 6월에 연락이 왔다.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사카 대학교의 단백질연구소에서 만난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45)는 역시 그동안의 보도대로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직장 동료들과 농담을 즐기는 2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연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자신의 최근 연구에 대해 설명할 때는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일본 사회가 그를 아끼고, 많은 일본인들이 그로 인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의 뛰어난 연구실적과 인기 때문인지 그가 속한 136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중견기업 시마즈(島津) 제작소(종업원 9900 여명)는 지난해(2003년)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지하철 등에서 승객들이 나를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고 할 때 가장 당혹스럽다”며 “최대한 미디어를 피하고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근 1년 만에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호기심만으로 연구 시작

책「일의 즐거움」이란 자서전(도서출판: 김영사)이 한국어판으로도 나와 인기라고 하던데요. 책 멋지다 다나카(2003년에 출판)

“솔직히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됐죠. 2년 전 수상 당시는 정말 각종 매스컴에 아침·낮·밤으로 나오더군요. 하지만 내내 위화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프로그램인지 잊었지만 어떤 기회에 TV를 보니 나와 처가 너무 코믹하게 나오더라고요. 내가 보면서도 이런 바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나같지 않은 나’란 느낌이라고 할까요.

마치 내가 연예인처럼 돼 버렸다고나 할까요. 다나카라는 인간 전체가 아니라 중요한 부분은 다 떼어낸 채 흥미 위주로 다루니까요. 그래서 뭔가 나를 제대로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내게 된 거죠. 또 책을 통해 나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뒤에서 묵묵히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일본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TV는 가급적 출연하지 않고, 두고두고 독자들이 나의 뜻을 알아줄 수 있는 미디어만 만나고 있어요.”

연구자 ‘다나카’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호기심이에요. 최초에는 정말 호기심만으로 연구를 시작하죠. 그리고 연구가 재미있고 이것이 실제로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힘이 나고요.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계속 갖고 ‘내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뭔가를 해명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럼 제일 처음 연구자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도 호기심 때문이었나요.

“그렇죠. 저는 대학에서는 전기를 전공했는데, 전기회로에 호기심을 느껴 조립하다 보니 그게 라디오가 됐습니다. 1970년대나 80년대만 해도 일본에선 각종 가전제품이 마구 뻗어나갈 때였죠. 그래서 나도 거기에 일조해야지 하는 마음에 전기를 선택했던 거죠.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와 제가 한 일은 화학이에요. 처음에는 내가 왜 전공도 아닌 화학을 해야 하는지 낙담도 했어요. 그런데 시각을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화학이란 것은 뭔가 변화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래서 그 변화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이것이 나의 호기심을 가장 만족시켰고 즐거움을 줬어요.”

요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 등에서 창의성를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요.

“솔직히 요즘 대학생이나 젊은이들은 뭔가 다른 것 같아요. 상당수 젊은이들이 ‘기존에 있는 걸 잘 응용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독창성이란 단어에서 ‘독(獨)’은 말 그대로 혼자서 하는 거에요. 자신이 하는 거죠. 그런 사고가 부족해져 가는 것 같아 아쉬워요. ‘난 생각을 안 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가장 안 좋은 겁니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거죠.”

이공계 존경 못받는 게 문제

한국에선 최근 ‘탈 이공계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겁니까?

“잘은 모르지만 일본도 한국만큼 심각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효약은 없다고 봅니다. 교육 문제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일단 교사들이 과학에 별 관심이 없잖아요. 초등학교·중학교의 경우 교사 중 문과와 이과 출신을 비교하면 어디가 많을까요? 거의 대부분 문과일 겁니다. 과학에 대해 관심도 없고 지식도 없는 교사들이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저의 경우를 보면 어릴 때 선생님이 실험의 재미를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 품었던 과학기술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그리고 미래는 과학에 의해 계속 좋아질 것이라는 상상이 늘 있었죠. 이런 것들이 사라지니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경의도 줄어드는 거죠.

하지만 이공계 비율이 30 %에서 10 %로 줄어든다고 해도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10 %의 연구자들로도 연구가 된다면 괜찮습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줄었다고 해도 별 문제가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효율성이 높아지면 되는 거죠. 가장 큰 문제는 이공계 사람들이 열심히 해도 존경받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최근 일본에선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부쩍 많이 거론되는데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학 등의 최첨단 연구들도 중요하지만 기초연구의 중요성 못지않게 물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지 기술만 개발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죠. 보다 신뢰성 높은 제품을 많이 만들 수 있게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요즘 모 자동차회사(미츠비시 자동차를 뜻하는 듯)의 리콜 사태를 보세요. 그걸 잘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 것들이 중요시되지 않으면 제조업의 근간이 흔들립니다. 지금까지 일본의 강점이라는 것이 세세한 작업에서 어긋남 없이 잘해 왔다는 것인데 그런 것을 귀찮다고 경시하니까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나고 하는 거죠. 최첨단 벤처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분야에 대한 정밀함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최근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서로 다른 분야간의 융합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예컨대 여기 있는 질량분석장치를 보죠. 먼저 몸에서 단백질을 추출하는 의학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약학, 여기에다 화학 · 공학 · 수학 · 전기 · 소프트웨어가 필요합니다. 총 7개의 학문 분야가 모여 하나의 종합기술로 만들어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선 자동차도 마찬가지죠.

제조업을 강점으로 하는 일본도 이걸 잘합니다. 즉 서로 다른 분야의 인력이 모여야 기발한 다른 발상을 만들어내기 쉬운 거지요. 또 실제 여러 분야의 인력이 안 모이더라도 정보가 모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팀워크를 이뤄 함께 해나가는 게 결코 독창성을 방해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분야의 사람이 모여 팀워크를 이루면 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지요. 그걸 말하고 다니고 있는 겁니다.”

동남아로 나가선 기술축적 힘들어...

″그렇다면 요즘 일본 제조업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도 서로 다른 분야간의 융합이 제대로 이뤄져서인가요.

예컨대 셀(cell) 방식을 통해 일본 기업들이 동남아 못지않은 제조원가 삭감을 이뤄냈잖습니까. 이런 것만 봐도 미국 것만 따라가면 좋은 건 아니라는 거죠. 요즘 신장세가 두드러진 디지털카메라나 자동차산업을 봐도 그들 회사들이 대부분 일본식 시스템의 좋은 점을 고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벤처에서 하는 게 좋아 보인다고 무조건 도입해서는 안 되지요.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이 요즘 일본 제조업의 활기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선 팀워크가 의외로 창조성이 있는 거죠.″

가벼운 이야기 좀 하죠. 노벨상을 수상한 지 2년이 지났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대우가) 조금은 나아졌어요. (웃음)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전 기업의 연구자로 영원히 남고 싶습니다. 다행히 회사에서 배려해 줘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 펠로(특별연구원) ’란 타이틀도 줬고. 조금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돼 지난해 후반부터는 실제 연구를 내 스스로 할 수 있게 됐어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얼마 전 미국에서 학회 발표가 있었는데 내 연구가 좋은 반향을 얻었어요. 아직 구상 단계이지만 앞으로 일본의 연구기관과 세계의 다른 대학 연구기관들이 공동연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해요.”

그렇다면 지금은 완전히 연구에 전념하는 분위기군요.

“아니요. 전념은 안 되고 있어요(웃음). 제 생각에는 절반 정도라고 할까요. 최근 1개월간만 봐도 전혀 실험이 안 되고 있어요. 불만이죠. 물론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지만 역시 내가 직접 실험해 그 결과를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한국 젊은 연구진 활기 넘쳐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앞서 잠깐 얘기했지만 언제까지나 호기심을 갖고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개발해 이 세상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들고 싶어요. 연구자·기술자로서 현역으로 남아 있는 한 계속해 나가야죠. 회사의 정년이 65세 전후지만 너무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만 안 줄 수 있다면요(웃음).

한국의 젊은이, 특히 이공계 젊은이들에게 충고를 한다면.

“지난달 대만에 다녀왔어요. 느낀 것은 대만은 일본과 달리 젊은이들이 매우 활기넘친다는 거에요. 한국도 마찬가지에요. 최근 미국 학회에서 한국인 연구자 몇명과 만났는데 일본에 비해 무지무지하게 활기가 넘치더군요. 그들을 보면서 저의 20년 전이 생각나더군요. 제가 그때 겪었던 경험과 매우 상황이 비슷하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그들이 저처럼 노벨상을 받게 된다거나 어떻다고는 잘라 말할 수 없지만요. 하지만 실제 저도 노벨상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사람 아닙니까?

어쨌든 그런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일단 젊은이들이 활기가 넘친다는 것은 독창성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봐도 곤란하지만 너무 비관할 필요도 없다고 봐요. 지금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수가 동양 사람들이에요. 예컨대 질량분석만 봐도 그래요. 가장 많은 게 아마 중국인이고 다음이 한국이죠. 일본은 인구비로 보면 한국보다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이런 게 다 힘든 이공계 일을 안 하려는 사회적인 추세와 관련이 있는 거죠.

한국인 연구자가 5년 후 10년 후에 뭔가 엄청난 것을 발견하거나 개발했다는 뉴스가 나올 것으로 봐요.”


다나카 고이치는…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는 ′박사′ 나 ‘교수’칭호가 없는,도호쿠대학 졸업(학사)이 전부인 무명의 기업 연구원(샐러리맨 연구원)이었다. 지난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이 같은 그의 경력 때문에 ‘샐러리맨 신화’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1983년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東北) 대학교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입학 동기보다 1년 늦게 졸업(양아들이었다는 충격으로 독일어 F학점,1년유급)할 정도로 공부에 매달린 학생도 아니었다. 나의 주석: 약 50명의 졸업생중에서 성적이 3등이었다고 훗날 다나카의 지도교수가 말했다. 지도교수가 대학원에 진학을 하라고 권유를 했지만 취업을 해서 양부모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몇 년전에 KBS 1TV의 9시 뉴스를 봤는데 도호쿠대학(동북대학)의 세계대학순위가 70위권에 있었다. 교토대학과 도호쿠대학은 이공계에서 쌍벽을 이룬다.

졸업 후 가전업체인 소니의 문을 두드렸고 필기시험을 잘 봤으나 면접시험 때 긴장을 하면서 대답을 잘못해서 떨어졌다. 지도교수의 추천(한 번 회사에 견학을 가서 바이오 기계등을 보고 어디에 쓰는지 물어봤고 의학에 공헌하기로 함)으로 결국 교토(京都)에 있는 정밀기기회사 시마즈(島津) 제작소에 입사해 그에게는 생소한 분야인 생화학 연구를 하게 됐다.

단백질 질량분석장치(MALDI),즉 매트릭스 지원 레이저 이온화법(MALDI,Matrix-Assisted Laser Desorption Ionization)연구를 다나카를 포함한 5명이 약 3년의 기한으로 생체 거대분자(단백질)의 질량을 측정하려는 프로젝트를 했다.

다나카는 1985년 2월하순의 어느날에 코발트(Co) 미세분말(저패니즈 파우더)에 글리세린을 실수로 섞는 실수를 했는데 이 매트릭스(완충제,질소 레이저로 조사할 때 단백질이 파괴되지 않게 이온화시킬수 있는 물질)를 버리지 않고 비타민B12의 질량을 측정하는데 썼다.

‘주임’ 시절인 지난 2002년 단백질 등의 생체 고분자를 간단하게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 신약 개발의 새 지평과 암 조기진단 가능성을 연 점 등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을 받게 되자 “회사 출장 시 신칸센(新幹線) 열차를 이용할 때 ‘히카리’(한국으로 따지면 무궁화)밖에 못 탔는데 이제 ‘노조미’(새마을)를 탈 수 있게 됐다”며 멋쩍어한 일화는 유명하다.


목록보기
300% 환급 프리패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