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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판 사랑과 전쟁’ 이제서야 알려지는 영국 왕실 고부 갈등
사랑과전쟁 | 2018.05.08 | 조회 370
엘리자베스 여왕, 아들의 불륜 혐오…결혼 축사 읽으면서도 새며느리 카밀라 언급 일절 안해

[일요신문] 영국 왕실 가족의 이야기는 늘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 못지 않게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곤 한다. 왕족이라는 특성에 더해 사랑, 불륜, 권력 다툼 등 드라마 못지 않은 흥미로운 소재가 가미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이런 흥미로움은 찰스 왕세자와 고 다이애나비의 순탄치 못했던 결혼생활이 신문 지면을 오르내렸던 당시 절정에 이르렀다. 둘의 파란만장했던 스토리는 정략 결혼, 삼각관계, 불륜, 이혼, 그리고 비명횡사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한 편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비극적인 스토리는 다이애나비가 죽은 뒤에도 계속됐다. 다이애나비가 세상을 떠나고 8년 후, 찰스 왕세자는 영국인들의 반감을 뒤로한 채 오랜 시절 그의 내연녀였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 마침내 정식 부부가 됐다. 당시 둘의 결혼 소식은 많은 영국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왕실의 결혼식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태도였다. 과연 여왕은 아들의 재혼을 순순히 허락한 걸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 영국에서 출간된 찰스 왕세자의 전기인 ‘반란의 왕세자: 찰스의 권력, 열정 그리고 반항’이라는 책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여왕과 카밀라 사이에는 오랫동안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어 왔으며, 카밀라를 왕실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여왕은 찰스의 재혼을 한사코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4월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식. 이날 엘리자베스 여왕은 하루종일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로이터/뉴스원

지난 2005년, 57세였던 찰스 왕세자는 왕실 가족의 축복 속에(?) 마침내 자신의 오랜 내연녀이자 하나뿐인 사랑이었던 카밀라를 아내로 맞이했다. 하지만 둘은 당시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서 성대한 결혼식은 치르지 못했다. 대신 윈저궁에서 성혼 선언문만 낭독한 채 25분 만에 결혼식 행사를 마쳤고, 이어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축복 예배를 올리고 왕궁에서 만찬 행사를 갖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시 결혼식장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축복 예배가 열리던 세인트 조지 대성당과 만찬장에만 잠깐 모습을 나타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아주 잠깐이었다. 650여 명이 초대된 만찬 장소에 시간을 딱 맞춰 모습을 나타낸 여왕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축사를 읽어 나갔다. 하지만 축사를 읽으면서도 카밀라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이들’이라거나 ‘내 아들’ 혹은 ‘행복한 커플’이라는 식으로만 불렀다. 또한 여왕은 그날 하루종일 카밀라에게 말 한 마디도 붙이지 않았다.   

축사를 마친 후 여왕은 곧바로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놀랍게도 그날 오전 열렸던 ‘그랜드 내셔널’ 경마대회를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마치 아들의 결혼식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여왕의 태도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가족 기념 사진을 찍을 때도 여왕의 냉랭한 태도는 계속됐다. 여왕이 사진을 찍기 위해 머물렀던 시간은 단 52초. 그야말로 1분도 채 머무르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던 것이다.   

여왕의 싸늘한 태도에 낙담한 찰스 왕세자는 모후의 최측근 집사였던 빌리 탤론에게 “만일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오늘 결혼식을 보고 좋아하셨을 텐데”라고 푸념했다. 하지만 탤론은 안타까워 하는 찰스 왕세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분이 살아 계셨다면 오늘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을 겁니다.”  

실제 둘의 결혼을 반대했던 것은 비단 엘리자베스 여왕뿐만이 아니었다. 여왕의 어머니인 모후 역시 생전에 둘의 사이를 극구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비공식적이든 공식적이든 카밀라가 그 어떤 왕실 행사에도 참석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의 관계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불륜을 저지른 아들은 물론이요, 아들을 내버려두지 않고 급기야 결혼을 파탄낸 카밀라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런 카밀라를 가리켜 ‘악녀’라고 불렀다. 여왕이 카밀라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히 부도덕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왕은 심술궂고 날카로운 카밀라의 성격도 싫어했다.   
심지어 여왕은 지난 1992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가 별거를 시작하자 당시 모후의 거처였던 영국 왕실의 저택인 ‘클래런스 하우스’로 찰스 왕세자가 이사오는 것마저 불허했다. 아들이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여왕은 특히 당시 92세였던 모후와 함께 살고 있는 공간에서 아들이 행여 내연녀와 어떤 식으로든 시시덕거리게 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찰스 왕세자의 전기인 ‘반란의 왕세자: 찰스의 권력, 열정 그리고 반항’.

이에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함께 사는 것을 거부당한 찰스 왕세자는 상대적으로 춥고 불편한 저택인 세인트 제임스궁으로 이사를 갔다. 찰스 왕세자를 더욱 마음 아프게 했던 것은 평소 손주 사랑이 대단했던 할머니마저 카밀라에게 냉담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 여왕과 모후는 카밀라와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로 카밀라를 싫어했으며, 일부러 카밀라의 전 남편인 앤드류 파커 볼스와 보란 듯이 가깝게 지내는 식으로 카밀라를 모욕했다. 카밀라는 왕실 행사에서 배제하면서도 볼스는 종종 초청해 환대를 베풀곤 했던 것이다.  
  
이런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을 본 찰스 왕세자의 속은 타들어갔다. 이에 여러 명이 찰스 왕세자를 위해 중재를 나섰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무엇보다도 조카의 사정을 딱하게 여겼던 마가렛 공주가 나서서 언니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여왕의 태도는 단호했다. 카밀라를 만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이름을 입에 올리기조차 싫다고 딱 잘라 말했던 것. 이밖에도 찰스 왕세자는 여왕의 경주마 조련사이자 가까운 친구인 카나본 백작이나 여왕의 사촌인 앵거스 오길비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구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 1995년, 다이애나비가 2200만 명이 시청했던 그 유명한 ‘파노라마’와의 인터뷰를 통해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 관계를 털어놓자 여왕의 마음은 더욱 더 차가워졌다. 당시 다이애나비는 인터뷰에서 찰스 왕세자가 왕위를 승계할 자격이 과연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하면서 심지어 결혼식 전날 밤에도 찰스가 정부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그러면서 “우리 결혼 생활은 조금 복잡했다. 늘 세 사람이 있었으니까”라고 말했다.  

방송이 나간 후에 단단히 화가 난 여왕은 찰스 왕세자에게 “카밀라와 헤어지기 전에는 이미지를 재건할 수도 없고, 왕위 계승에 대한 논란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1996년 마침내 다이애나비와 이혼한 찰스 왕세자는 점차 불안감에 휩싸여 갔다. 심지어 왕실의 모든 사람들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가령 동생인 앤드류와 에드워드 왕자가 합심해서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해 일부러 여왕에게 카밀라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다고 의심했는가 하면, 다이애나비와 앤드류 왕자의 전처인 사라 퍼거슨이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도 의심했다. 가령 여왕이 사망하거나 퇴임할 경우, 찰스 왕세자의 장남인 윌리엄 왕세손이 18세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앤드류 왕자가 섭정을 하도록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찰스 왕세자는 마침내 여왕과 당당히 맞서기로 결심했다. 누가 뭐라 하든 보란 듯이 카밀라와 계속 만날 것이며, 결혼을 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것. 필립공이 자필 편지를 써가면서 말렸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찰스 왕세자는 카밀라와 결혼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화만 냈으며, 여왕의 개인 비서인 로버트 펠로스에게는 “어머니에게 가서 전해라.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변해야 한다고 말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왕은 아들의 이런 충고를 무시했다. 펠로스는 “찰스와 카밀라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이기적이다”라고 혀를 찼다.   
  

고 다이애나 비는 방송에서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을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 결혼 생활은 조금 복잡했다. 늘 세 사람이 있었으니까”라고 말했다.

1997년 무렵 모자 간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둘은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점점 멀리 했다. 하루는 여왕이 부재 중일 때 버킹엄궁에서 기금 모금 행사를 주최했던 찰스 왕세자는 은밀하게 카밀라를 행사에 초대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비워둔 후 카밀라를 앉도록 했던 것. 만일 여왕이 배석했다면 절대 가능하지 못한 일이었다. 찰스 왕세자는 당시 손님들을 향해 “주인이 집을 비우면 쥐들이 뛰어놀게 마련이죠”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갈등에 화가 난 것은 찰스 왕세자뿐만이 아니었다. 카밀라 역시 지루한 기다림에 짜증이 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용히 지내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낮은 자세로 지내라’는 찰스의 요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카밀라는 “당신은 친구들이랑 극장에 가면서 왜 나는 안 되는 거지?”라고 다그쳤다. 카밀라는 윌리엄과 해리 왕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에도, 휴가 때면 찰스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도 모두 화가 났다. 다이애나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마당에 자신이 왜 그렇게 숨어 지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는 여왕의 허락 없이는 둘의 관계를 공개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찰스 왕세자는 어머니와 담판을 짓기로 결심하고 여왕의 별장인 밸모럴 성을 찾아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여왕에게 둘의 교제를 허락해줄 것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왕의 태도는 한결 같았다. 여왕은 강한 어조로 “그 아이와는 볼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냉랭한 침묵이 흘렀고, 좌절한 찰스 왕세자는 그렇게 방을 나왔다.   

여왕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02년 모후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장례식에 카밀라가 참석하는 것을 반대했던 여왕은 아들이 TV에 출연해서 진심으로 할머니를 애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다만 허락은 하되, ‘모후의 지인’ 자격일 뿐이지 결코 ‘찰스의 연인’ 자격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엘리자베스 2세(왼쪽)와 카밀라. 2012년 6월 3일 여왕 즉위 60주년 행사의 하나인 템즈강 수상 퍼레이드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한동안 여왕은 아들이 자신이 눈을 감기 전에는 절대 카밀라와 재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이런 여왕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05년 찰스 왕세자는 당당하게 카밀라에게 청혼했고, 어떤 이유에선지 여왕은 아들의 결혼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카밀라에 대한 싸늘한 태도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결혼식 날짜를 잡았는데도 어떤 왕실 행사나 만찬 자리에도 카밀라를 공식으로 초대하지 않았으며, 카밀라의 결혼 반지를 맞출 때에도 “웨일스의 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식으로 인색하게 굴었다. 또한 국민 정서를 고려하고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축하 파티는 간소하게 치러야 한다고 명령했다.   

사실 둘의 결혼을 썩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은 여왕뿐이 아니었다. 당시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역시 우호적이진 않았다. 영국인들의 대다수는 찰스 왕세자 대신 윌리엄 왕세손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단 16%만이 카밀라가 여왕이 되는 것에 찬성하고 있었다. 이런 국민적 반감을 의식한 버킹엄궁은 찰스 왕세자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면서 “카밀라는 조용히 낮은 자세로 지낼 것” “뒤에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할 뿐 여왕(Queen)이 될 생각은 없다”라는 식으로 국민들을 달랬다.   

이처럼 둘의 파란만장했던 로맨스는 사실 모두의 축복 속에 결실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재까지 보란 듯이 평탄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둘의 모습을 대하는 영국인들의 시선은 그사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 듯하다. 지난 2015년 ‘데일리메일’이 실시했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인들의 34%가 카밀라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38%가 싫어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찰스의 ‘카밀라 왕비’ 만들기 작전...왕세자 웹사이트 보니, 그때 그 약속 ‘삭제’

카밀라는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후 ‘콘월 공작 부인’이라는 공식 칭호를 부여 받았다. 그렇다면 현재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 왕세자가 왕위를 물려 받아 ‘왕(King)’이 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영국 왕실의 전통대로라면 카밀라는 ‘왕비’라는 뜻의 ‘퀸 콘소트(Queen consort)’, 혹은 줄여서 ‘퀸(Queen)’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카밀라가 ‘왕비’라는 칭호를 받게 될지 미지수다. 왜냐하면 결혼 당시 왕실 측이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올라도 카밀라가 공식적으로 ‘왕비’라는 칭호를 받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대신 왕실 측은 카밀라가 받게 될 칭호는 ‘프린세스 콘소트(Princess consort)’라고 발표했었다. ‘프린세스 콘소트’는 왕실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칭호로, 그야말로 카밀라를 위해 처음 조합된 생소한 칭호였다.     

파란만장한 로맨스를 벌인 찰스-카밀라 부부는 현재 평탄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카밀라는 과연 왕비의 칭호를 받을 수 있을까. AP/연합뉴스

이는 영국인들의 카밀라에 대한 적대감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반감을 의식한 버킹엄궁의 궁여지책이었다. 찰스 왕세자와 결혼은 하되, 카밀라가 공식적으로 왕비 칭호를 받게 되는 데는 제한을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영국 왕실의 소식통에 의하면 찰스 왕세자가 이를 뒤엎고 은밀하게 카밀라를 ‘왕비’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왕위를 계승하는 즉시 카밀라에게도 ‘왕비’라는 공식 칭호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보도한 ‘데일리비스트’는 찰스 왕세자 웹사이트의 ‘자주 묻는 질문’란에 이와 관련된 항목이 어느 순간 삭제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찰스 왕세자가 왕위를 계승할 경우, 카밀라는 ‘프린세스 콘소트’에 머물 것’이라는 내용이 사라졌다는 것. 이에 왕실 전문가들은 찰스 왕세자의 은밀한 ‘카밀라 왕비 만들기 작전’이 들통이 나고 말았다고 전했다. 왕실 전기작가인 페니 주노는 “내 생각에 찰스 왕세자는 예전부터 늘 카밀라를 왕비로 만들어 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찰스 왕세자 측은 “사이트는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 그 질문은 한동안 국민들이 궁금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삭제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그밖의 다른 질문들, 가령 “왕세자는 애스톤마틴을 몰고 있는가?” “보좌관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과연 이런 질문들이 카밀라와 관련된 것보다 국민적 관심이 더 높은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왕실 관계자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여왕이 찰스 왕세자의 결혼을 허락했던 것도 왕위 승계 후에도 카밀라가 ‘프린세스 콘소트’에 머물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점차 권력을 얻을수록 찰스 왕세자는 지난 수천년간 영국 왕실이 그랬던 것처럼 카밀라에게도 ‘왕비’라는 칭호를 주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을 국민들이 알아줄 것이며, 어쩌면 걱정했던 것보다 지지를 많이 받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몰래 이런 계획을 밀어붙일 경우에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거센 반발에 부딪힐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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