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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혼부’ 이야기
퓨 | 2018.05.28 | 조회 319
[동정 아닌 권리로 비혼출산을 말하다②] 20대 미혼부 박민승(가명) 씨 인터뷰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미혼모·미혼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비혼출산 이후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양육을 선택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아동의 인권과 부모의 권리라는 새로운 가치로 비혼출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 기자 말


미혼부 박민승(가명) 씨와 26개월 된 아들 ‘준이’(가명).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우리나라 양육미혼부는 약 9000명. 지난 18일 경기 수원시의 한 원룸에서 미혼부 박민승(가명, 29세) 씨를 인터뷰했다. 그곳에서 박 씨는 생후 26개월 된 아들 ‘준이’(가명)를 홀로 키우고 있다. 박 씨가 들려준 이야기를 1인칭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제 이름은 박민승, 스물아홉 살입니다. 준이를 임신했을 때 저는 스물여섯 살, 애 엄마는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그때는 저도 일을 하고 있었죠. 원래는 회사를 다니다가 회사가 망해서 한순간에 그만두게 됐어요. 그 뒤로 여기저기서 일하다가 정육점에서 일하던 때였죠.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걸 딱 알았을 때 일단 무서웠어요. 주변에 낙태수술 하라는 사람들도 있었죠. 저희 둘 다 엄마가 안 계셨어요. 양쪽 아버지들도 처음에는 같은 말을 하셨죠. “수술해라. 아직 결혼은 안 된다. 좀 더 준비를 하고, 너네가 정말 좋으면 결혼을 먼저 하고 애를 낳아라.”

그런데 제가 “어떻게 애를 지워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라고 하고, 그 얘기에 흔들리진 않았어요. 저희 둘 다 ‘한번 키워보자, 아이 낳고 결혼하자’ 했는데, 사실 생각도 못한 일이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준비된 건 아무것도 없었죠. 일단은 같이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보증금 얼마에 월세 얼마 해가지고 같이 살 방을 구했어요. 근데 그 집에는 한 3일인가 같이 있었어요. 애 엄마가 오질 않았어요.

아기를 낳고 돈이 없어서 조리원엔 못 갔어요. 애 엄마 할머님한테 용돈 조금 드리면서 산후조리를 부탁드렸죠. 그런데 한 20일 됐을 때 애 엄마가 말하더라고요. 못 키우겠다고. 그리고 돈을 달라고 했어요. 임신하고 아기 낳느라 자기 몸이 망가졌으니 몸 만드는 데 1000만 원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랑은 살기 싫다고 하면서 자기가 아이를 키울 테니 한 달에 100만 원씩 달라고 하고요.

제가 50만 원은 줄 수 있다 했더니, 그러면 못 키우겠대요. 그리고 걔 아버지가 같이 와서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다 어쩐다 협박을 한 거예요. 화가 났죠. “됐어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내가 키울게요. 그냥 가세요.” 그때부터 혼자 키우고 있는 거예요. 덜커덕 제가 키우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래, 우리 핏줄 우리가 키워야지” 그랬어요. 결혼한 누나도 걱정하긴 했어도 말리지는 않았어요. 한 일주일 지나니까 기분도 그냥 그렇더라고요. 애 엄마가 밉지는 않았어요. 저도 무조건 잘한 건 아니니까.

준이라는 이름은 제가 지었어요. 서울에 있는 친구 자취방에서 생후 20일 된 아이를 키웠죠. 아이 봐줄 사람은 없고 제가 아이를 보면 일을 못하니까, 살던 방 보증금을 빼서 친구 집으로 들어가고 보증금 뺀 건 생활비로 썼죠.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였어요. 방이 두 개니까 그냥 오라고 하더라고요.

도움을 엄청나게 받았죠. 애가 있으면 겨울에 가스비도 많이 나올 텐데 군말 안 하고 다 내주고 준이 과일도 매일 사주고…. 엄청 고맙죠. 가족들한테는 도움을 조금씩 받다가 안 받다가 그랬어요. 누나도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생활비도 보내주다가 나중에는 점점 힘들어져서 못 줬죠.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준이는 어린이집에 갈 수 없다. 원룸에서 아빠와 놀거나 놀이터를 가서 노는 것이 대부분의 하루 일과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백일 된 아기 업고 공장일… “이렇게라도 돈 벌어 키워야 하니까”

아기를 집으로 딱 데리고 왔을 땐 정말 막막했죠. ‘목욕은 어떻게 시키지? 기저귀는 어떻게 갈지?’ 인터넷으로 다 검색해봤죠. 정부 지원 같은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당장 먹이고 입히는 것만 생각하다가 조금 익숙해지니까 예방접종 같은 것도 생각나더라고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일단 애를 안고 보건소부터 갔어요. 근데 준이는 아직 출생신고가 안 돼 있잖아요. 관리번호라는 게 있어서 그걸로 예방접종은 했죠.

출생신고는 왜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사랑이법’이 생겨서 좀 쉬워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엄청 복잡해요. 법이 복불복이라고 해야 하나. 두 번이나 신청했는데 다 부결됐어요. 또 하려고 준비 중인데 변호사한테 물어봐도 모르고, 아는 사람이 없어요.(기자 주 : 2015년 일명 사랑이법 개정으로 친모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아이를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것도 간단치 않다. 지난 1월 11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00건이 넘는 미혼부 출생신고가 있었지만 법원이 허가한 것은 16건에 그쳤다. 미혼모는 출생증명서가 있으면 비교적 간단하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보건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포스터가 붙어 있잖아요. 분유 지원, 기저귀 지원…. 그래서 어떻게 받나 물어보니까, 출생신고가 돼 있어야 한대요. 양육수당도, 한부모 지원도, 뭐가 됐든 일단 출생신고가 돼 있어야 돼요. 지원받을 수 있는 게 0이죠, 0. 아이가 있는데도 서류로 증명된 게 없으니까.

그러다가 친구 집에서 나와야 할 상황이 됐어요. 막막하잖아요. 다섯 군데 정도 (한부모) 시설에 전화를 해봤는데 다 안 된다고, 무조건 출생신고가 돼 있어야 된다고 그랬죠. ‘어떻게 하나’ 하고 있을 때 친구가 러브더월드라는 미혼부모 후원 단체를 알아봐줘서 딱 하루 와서 만나뵀어요. 살 곳을 마련해주시겠다고 하시고, 2주쯤 지나서 정말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 살게 된 거예요. 보증금, 월세도 다 내주셨어요.

지원을 받으려면 뭐든지 서류로 증명이 돼야 돼요. 근데 서류가 뭐가 필요해요? 이 애가 증건데. 동사무소, 구청 가봐도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요. 제가 들은 말은 “안 됩니다. 법원 가셔야 됩니다.” 그게 다죠. “아니, 내가 얘 아빤데 왜 출생신고를 못해!” 화도 나고 답답하죠. 애초에 아기를 데리고 오기 전에, 애 엄마한테 “네가 출생신고를 하면 내가 데리고 와서 키울게” 그렇게 말하고 데리고 왔어야 되는데…. 몰랐으니까.

어떻게든 일을 하려고 시도는 해봤어요. 준이가 백일 됐을 때 컨베이어 벨트로 돌아가는 공장에 생산직으로 갔거든요. 면접 볼 때도 애를 업고 갔죠. 사장님한테 상황을 말씀드리니까 “그게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라고 하셔서 일하러 갔는데 엄청나게 문제가 됐죠. 애를 업고 일하는데 애가 울어요. 근데 일을 멈출 수가 없잖아요. 제가 멈추면 제 뒤 공정이 다 멈추니까. 쉬는 시간 돼서 애를 보면 조그만 한 아기가 하도 울어서 얼굴이 시뻘개져 있고…. 처음에는 그래도 꾹 참았어요. 이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되니까.

다들 일에 집중을 해야 되는데, 애가 계속 우니까 집중을 못하죠. 쉬는 시간이 딱 10분인데, 애가 어디 10분 안에 분유를 먹나요? 못 먹지. 그럼 또 늦어지고. 일하는 동안 준이가 ‘응아’라도 하면 쉬는 시간까지 참아야 되는데 냄새는 엄청 나지, 여러 가지로 안 되겠더라고요. 4일 정도 출근하고 그만뒀어요.

8개월쯤 돼서 준이가 기어다닐 때, ‘노래바’ 같은 데서 밤에 웨이터 일도 했어요. 일하는 사람들 대기실 같은 곳이 있어서 부탁을 했죠. “담배 여기서 피우지 마시고, 일 안 하실 때 아기 좀 봐주세요”라고. 그런데 담배도 그냥 피우고, 애가 울어도 그 사람들은 왜 우는지 모르니까 그때마다 “민승씨! 민승씨!” 불러대고. 또 술 마시는 곳이니까 손님들끼리 큰소리도 나고…. 거기도 겨우 3일인가 있었어요.

“아빠 혼자 애 키운다고? 그럼 애는 할머니한테 맡기고 일하면 되지.”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건 애를 맡길 만한 다른 가족이 온전히 있을 때 얘기죠. 저는 기초생활수급도 받을 수 없어요. 신체 건강한 20대가 왜 일을 못하는지 증명할 서류가 없는 거예요. 아이 출생신고가 안 돼 있으니까. 생활비도 후원 단체에서 보내주세요. 물티슈, 기저귀, 쌀, 세제 다 챙겨주시고. 정말 감사하지만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죠.


아빠와 기자가 인터뷰를 하는 중에 혼자 ‘빠방’ 장남감을 가지고 노는 준이.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두 번 거절당한 출생신고… 복지 ‘사각지대’에서 후원으로 생계유지

한번은 밤에 아이가 열이 났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다가 응급실을 갔어요. 그냥 독감인지 아닌지 검사하고 해열제 먹이고 체온 몇 번 재고 한 것 같은데, 37만 원이 나오더라고요. 출생신고가 안 돼서 건강보험이 안 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제가 열 내리는 법을 공부해서 병원 안 가고 해결해요.

점심 먹고 나면 보통 놀이터에 나가서 놀아요. 하루가 대부분 그렇죠. 여기는 놀이터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더라고요. 거기 사는 애들끼리, 아는 애들끼리만 어울리더라고요. 준이가 또래 친구들 만나면 반가워서 계속 들러붙어요. 그러면 걔네는 “아 싫어. 우리끼리 놀 거야!” 그러고, 그런 거 보면 안쓰러워요.

발달이나 교육 같은 건 지금도 걱정돼요. 어린이집 가서 또래 친구들하고도 어울려 놀고 해야 되는데. 출생신고가 안 돼서 어린이집도 갈 수 없거든요. 다른 애들 보면 26개월 되면 말도 어느 정도 하더라고요. 준이는 아직 숟가락질도 제대로 못해요. 어린이집을 못 가서 그런가 보다 싶어서 걱정이 되죠.

그래도 입양 보내라는 얘기는 한 번도 안 들어봤어요. 처음에는 솔직히 창피했어요. 애를 혼자 데리고 나갔을 때 사람들이 쳐다보면 ‘왜 쳐다보지? 미혼부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뭘 알고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애가 예뻐서 쳐다보는 건데 괜히 혼자서 그랬어요.

예전에는 밖에서 누가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 혼자 애를 데리고 나왔어?”라고 물으면, “엄마 만나러 가요” 그랬어요. 지금은 그냥 “저 혼자 키워요”라고 얘기해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생각해보니까 창피해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더라고요. ‘애를 놓고 간 사람이 창피해해야지, 왜 내가 창피해해야 돼?’

‘네 새끼 네가 책임져야지, 무슨 도움을 바라?’라는 시선도 많이 느꼈어요. 맞는 말이죠 뭐. 근데 제가 책임을 질 수 있게끔 최소한 출생신고만 돼도 좋겠어요. 모든 미혼부들이 출생신고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도움 받을 곳이 이렇게 없다는 걸 알고 선택하는 게 아니잖아요. ‘당연히 내 새끼니까 내가 키워야지’라고 데리고 오는 건데, 당연한 줄 알았던 출생신고조차 안 되고….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준이도 언젠가는 “왜 우리 가족은 아빠랑 나밖에 없어?”라는 질문을 하게 될 텐데, 무섭네요. 뭐라고 해야 할지. 다른 미혼부들은 어떻게 했는지 좀 알려주면 좋을 텐데…. 다른 미혼부들을 만나본 적은 없고 인터넷에 몇 번 질문 글을 올려본 적은 있어요. 어떤 사람한테는 “만나서 여쭤봐도 될까요?” 했는데 꺼리더라고요. 쪽지로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분이 그 다음부터 연락이 안 됐어요.

지금 후원 단체에서 주택청약도 넣어주시거든요. 나중에 임대아파트 신청하라고. 저도 나중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다른 미혼부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제 경험이라도 알려주고 싶어요. 미혼부들이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너무 없거든요. 아이를 포기하거나, 정말 해서는 안 되지만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애를 지키고 싶어도 포기하게 만드는 거죠.

준이는 잘 때가 제일 예뻐요. 그리고 자는 거 보면 또 매일 미안하고 안쓰럽죠. 아빠의 선택을 이해하려면 아마 성인이 돼야겠죠. 지금을 버티게 하는 희망도 준이예요. 지금 제일 간절한 건 출생신고죠. 출생신고가 되면 제일 처음에 애 엄마한테 양육비를 청구할 거예요. 애 엄마도 최소한의 책임을 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준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무조건 닥치는 대로 일부터 해야죠.


박민승 씨는 준이가 잘 때 가장 예쁘고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한다고 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출처 : No.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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