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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_서동과 선화공주 사랑이야기
하뚜머겅 | 2018.06.04 | 조회 431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공존하던 우리 나라 고대에 해당하는 삼국시대는 “어제의 적은 오늘의 우방, 오늘의 우방은 내일의 적”이라는 식으로 국익이나 친소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상대를 바꾸며 전쟁을 하던 시기였다. 
  
유명한 중국의 삼국시대를 스토리텔링하여 게임화한 ‘삼국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하면 너무 살벌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런 무시무시한 시대에도 남녀간의 사랑은 꽃피었고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국경을 넘은 적들간의 사랑도 드물게 있었다. 백제 멸망전의 임금인 의자왕의 아버지 무왕 즉 서동도 그런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다. 
  
무왕 앞에 임금을 한 위덕왕의 동생이자 무왕의 할아버지 혜왕(惠王)과 무왕의 아버지 법왕은 모두 재위 1년 만에 죽었다. 당시 백제는 국내외 정세가 악화되고 귀족 간에 내분이 일어났으며 독살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왕의 단명은 그러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만 했다. 이런 시대 법왕의 아들 서동과 선화공주의 국경을 넘은 사랑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일까?

부여 궁남지 (출처 : 문화재청)

그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부여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못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무왕의 정식 이름)을 낳고 항상 마를 캐어 팔아서 생업(生業)을 삼았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 때문에 서동이라고 이름하였다.”(『삼국유사』권제이 기이제이 무왕조 : 이하 동일)

위 이야기의 무대는 큰할아버지 위덕왕의 시대였다. 왕위계승에서 패한 위덕왕의 동생인 혜왕의 손자 무왕은 어려서부터 살기 위해 도성을 피해 아버지를 떠나 시골로 간 것 같다. 왕족이라는 출신을 속이기 위해 하층 서민들이나 하는 마를 캐는 신분으로 위장을 하고 익산 부근 외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곳에 숨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용과 과부의 결합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된다. 설화속의 ‘넌픽션’으로 왕족을 상징하는 용과 도성을 벗어나 시골에 숨어사는 왕자비의 위장신분으로서의 과부로 이해하면 크게 문제는 없을 듯 싶다. 이렇게 불우했던 서동에게서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

2005년 방영된 SBS 드라마 서동요 (출처 : SBS)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 경주로 갔다.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그것은 이러하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동요가 서울에 가득 퍼져서 대궐 안에까지 들리자 백관(百官)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보내게 했다. 장차 떠나려 하는 데 왕후(王后)는 순금 한 말을 주어 노자로 쓰게 했다. 공주가 장차 귀양지에 도착하려는데 서동이 도중에 나와 절하면서 장차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비록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믿고 좋아했다. 이로 말미암아 서동을 따라가면서 몰래 정을 통하였다. 그런 뒤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았고, 동요의 영험을 믿었다.”

왕족 출신이고 향후 왕위계승전을 준비하기 위해 신라왕실이라는 튼튼한 처가를 가지고 싶었던 것인지 서동은 선화공주의 미모에 대한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에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을 수 있었던 승려로 위장한 간첩들의 활동이 활발했었던 시기다. CIA의 블랙처럼 몰래 스파이 활동을 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동은 보지도 못한, 아니 볼 수도 없었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승려로 위장하여 국경을 넘었다. 신라 왕경인 경주에 도착해서도 ‘동요’를 빙자해서 유언비어를 날조한다. 이런 주도면밀한 기획을 통해 결국 아름다운 선화공주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함께 백제에 이르러 어머니(왕비)가 준 금을 내어 장차 살아 나갈 계획을 의논하니 서동이 크게 웃으며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오?”라고 하니, 공주가 “이것은 황금이니 백년의 부를 누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서동은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처럼 많이 쌓아 두었소”라고 하였다. 공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이것은 천하의 지극한 보물입니다. 그대가 지금 그 금이 있는 곳을 아시면 부모님이 계신 궁전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자 서동은 “좋다.”고 하였다. 이에 금을 모아 언덕과 같이 쌓아 놓고,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에게 가서 금을 실어 보낼 방법을 물으니 법사가 “내가 신통한 힘으로 보낼 터이니 금을 이리로 가져 오시오”라고 하였다. 공주는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가져다 놓았다.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보내어 두었다. 진평왕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서동을 존경해서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서 왕위에 올랐다.“

지명대사 역시 신라로 통하는 핫라인을 구축한 간첩이었다고 보면 어떨까?. 아니면 서동과 함께 은행보다 커다란 금은방을 운영했나보다. 용화사 자체가 금광을 관리했던 사찰이 가장 맞는 해석 같긴 하다. 여하튼 지명대사의 놀라운 법력(?)으로 서동은 처가인 신라왕실에게 금을 보내 인심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차저차한 연유로 경국 왕위에 오르니 이 역시 다른 왕자들보다 큰 ‘빽’ 즉 금이라는 재력과 신라왕실이 배후에 있어서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는 세상은 비슷한 면이 많았나보다.
 

2005년 방영된 SBS 드라마 서동요 (출처 : SBS)

그러고보면 처음부터 ‘마’는 연막에 불과했다. 서동왕자는 신분위장과 피신을 위해 시골에 와서 마를 캔 것이 아니라 배수진으로서 몰래 시골에서 금광을 운영했다는 말이 된다. 어쩌면 유통시킨 금으로 지명대사를 통해서 신라 왕실에 대한 로비를 벌였을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동요는 신라왕실이 서동의 무리한 요구에 반대할지도 모르는 세력들을 무마하기 위한 하나의 연극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런 연극의 공동 기획자인 서동의 집안과 신라왕실의 덕으로 서동과 선화공주는 행복한 미래를 함께 설계 하게 되었다.

삼국유사의 대표적인 사랑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는 낭만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수간의 사랑처럼 소개되었다. 한편으로 요즘 여성의 눈으로 해석을 해서, 약탈혼과 같은 남성중심적으로 범죄적이며 폭력적인 모습으로 사랑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화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서 금을 가지고 정체가 탄로나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은 서동! 경주에 가서도 지극정성으로 선화공주와 그 가족들에게 구애했을 서동의 모습은 그냥 귀엽기만 할 따름이다. 사족으로, 어려서부터 건강식인 마를 질리도록 먹은 건강한 무왕이 즉위후 무려 41년간이나 재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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