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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잖은 로망
왓? | 2018.06.07 | 조회 364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친한 누나 A의 친구가 꽃집 주인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누나는 “익숙한 친구의 모습은 회사 카페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노트북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종종 만나 나누던 시답잖은 로망이 은근슬쩍 현실이 되어 있기도 하네”라며 감회를 밝혔다.

 

아, 그러고 보니 누구나 소박하고 철없는 꿈 같은 걸 하나씩 품고 살지 않나? 그날 밤 난 그간 묵혀 뒀던 시답잖은 로망 하나를 꺼내 펼쳤다. 내 시답잖은 로망은 음감회다. 음감회가 무엇이냐 하면 ‘음악 감상회’의 준말로, 음악을 감상하는 모임이다. 나의 음감회는 이렇다.

 

서울 한복판의 퇴근 시간, 해가 주황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며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다. 어느덧 까매진 길을 밝히려 가로등이 켜지려는 때, 나와 친구들은 인적이 드문 골목 조그만 술집(=아지트)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그리고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BGM으로 틀어 두고 맥주 한 잔을 홀짝거리며 ‘오늘 하루는 어땠냐’며 시시콜콜한 근황을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너무 시시한 로망이라 좀 놀랐다고? 사실 더 의미 있는 음감회를 만들기 위해 자체적인 이벤트를 이미 구상해 두었다. 훗. 행사 전, 음감회에 참여하는 친구들로부터 각자가 모임에서 들려주고 싶은 노래와 곡에 담긴 사연을 하나씩 ‘익명으로’ 수집해 둔다.

 

난 MC 겸 음감회의 DJ를 맡아 음악을 감상하기에 앞서 곡 소개와 함께 사연을 읽어준다. 대략 6~7명의 참가자들은 음악을 들으며 이 음악은 ‘누가 추천한 음악인지’를 추측해 미리 나눠준 종이에 사연 당사자들의 이름을 적는다. 음감회가 끝나갈 무렵, MC는 사연 주인공들을 공개, 동시에 정답을 모두 맞힌 참가자에게 미리 사비를 털어 마련한 고오급진 선물을 지급한다!

 

 

어때. 이 정도면 음감회에 참여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역시 시시하다고? 잠깐만! 또 음감회는 가끔 음감회가 아니라 다른 성격의 ‘XX회’로 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좋은 책, 시 또는 글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읽어주는 ‘낭독회’, 한자리에 모여 관심 있던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관람회’, 한때 가수의 꿈을 키우며 춤과 노래를 연마했던 친구들을 초청해 그들만의 콘서트를 보는 ‘학예회(?)’가 될 수 있을지도!

 

거창하게 떠들어 놓았다만 결국 까보면 그럴듯하게 포장한 음주 행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하. 사실 개미 눈곱만큼도 쓸데없는 생각이다. 침대에 누워 잠이나 잘 것이지 바보 같은 음감회 따위를 논하다니. 내일도 당장 처리해야 할 현실들이 산더미다.

 

‘슬슬 토X스피킹 시험 날짜를 잡아볼까.’ ‘하반기 공채는 언제 뜨나. 여름방학 인턴도 좀 알아봐 둬야지.’ ‘아 맞다! 취업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어디서 찍는 게 좋댔더라.’ ‘벌써 새벽 4시네. 몇 시간 못 자고 1교시 가야겠다.’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아 스탠드 조명을 켜고 책꽂이에 보물처럼 꽂아 두었던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소설가 김중혁의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 서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 책이 아무리 괴로운 일이 닥쳐도 ‘뭐라도 되겠지’ 끄덕끄덕 삶을 낙관하게 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소박한 바람대로, 300페이지 가득 부질없는 생각이 모여 있는데, 이상하게 그것들을 읽다 보면 근심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고 긍정적인 기운이 온몸에 퍼진다. ‘시답잖은 로망’도 그런 것 아닐까.

 

아무 짝에 쓸데없고 비현실적이지만 너무 낙천적이라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꿈. 원래 로망이란 건 이뤄지지 않을 때 더 아름다운 법이니까. 현실보다는 철없는 로망을 이야기하고 싶은 밤이다.

 

출처 대학내일I WRITER 권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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